예의가 없는 인간이 너무 많다.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자신이 베푼 선의에 취해있다.
예의가 없는 인간이 너무 많다. 뭐가 잘못인지도 모르고 심지어 자신이 베푼 선의에 취해있다.
어디서 시작된지 모르는 근거 없고 확인도 안되는 악의는 ... 피곤하다. 난 피곤한게 싫어서 그냥 엮이지 말자 하고 있을 뿐이다. 정말 단 한 순간도 엮이고 싶지 않다. 혼자 열내고 혼자 버럭거리다 혼자 사그라들길 바란다.
근데 난 센스도 없고, 응용할 데 없는 별거 없는 경험 외에 기술도 없잖아? 안될거야... 이제라도 기술을 배워야 하려나...
모든 게 너무 다 빨리빨리 되기를 바라는 이 사회에서, 느리고 몸을 움직이는 일을 하고 싶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걸까.
1년 8월?
스팀도 이정도로 세일은 안하겠다.
표창장 위조가 4년인데 주가조작이 1년 8개월?
다음엔 석궁 대신 표창 맞겠구만.
내머릿속대화
별 일 없이도 한번 더 보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는건 눈꼽만큼이나마 잘 살아왔다는, 그래서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는 것으로.
어쩔 수 없이 해야하는 일이 늘어가는게 싫다.
드라마의 전문가들은 핏이 딱 떨어지는 옷을 입고, 고급스러운 책상에 앉아 전문성을 뽐내는데, 나는 그냥 수면바지 입고 머리 헤집으며 괴로워하고 있을 뿐이다. 아니면 작업복 입고 물 뒤집어 쓰거나.
가진 것들이 더하다. 잔뜩 가지고도 얼마 안 되는 내 것을 나누지 않았다고 서운하다고 한다. 이미 이전에 이용할대로 이용해 먹은 그 일이 마치 나에게 베푸는 것인 양 생색을 낸다. 그냥 두기는 화가 나고, 엎어버리기엔 불리하다.
교감, 체험이란 말 너무 싫어.
뭘 요청을 하려면 제반 사항을 정리해서 알려줄 수 없나. 산파술마냥 언제, 어디서, 무엇을, 왜 하는지, 대상은 누구고 관련 예산은 있는지를 하나씩 묻다보면 답답해진다. 예전에는 답답하고 말았는데 요새는 내가 여유가 없으니 화가 난다. 다 뒤엎는다고 상황이 나아지지 않을지 아니까 화를 내지는 않으려고 노력하는데 가끔 인내심이 아주 가늘어지는 순간이 느껴져서 괴롭다.
실패 여부가 과제 심사 때 언급되면 차라리 낫다. 과제 심사가 아니라 과제 관련 허가 받을 때 담당 공무원이 그랬다. 작년에도 실패했는데 자기가 허가를 왜 내줘야 하냐고. 실패는 내가 감당하는데 엄한 사람이 갑자기 과제 심사위원인척 구는것인가.
트위터 글자수 제한이 풀어지면서 파란딱지와 그록으로 가득찬, 다른 SNS와 다를 바 없이 타임라인이 광고와 내 의도와 상관없는 추천글로 무너지는걸 보다보니 벗어나고 싶어졌다. 도대체 그 의미없는 AI 댓글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의미도 가치도 없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