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잡지 인터뷰 하면서 앉아있는데, 동박새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따라가고 싶었는데 일하는 중이라 그러지 못했다.
어제는 잡지 인터뷰 하면서 앉아있는데, 동박새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따라가고 싶었는데 일하는 중이라 그러지 못했다.
오늘은 자랑할 게 딱히 없는데 자랑하고 싶다.
AI 질감 참.... 잠깐 슥 볼 때는 그럴듯해 보였는데 처리하려고 자세히 들여다보니 소소하게 안 맞는 데가 한두 군데가 아님.
맞아요. 어려워요. 요즘도 본문에서 길게 설명할까 주석으로 처리할까 이래저래 고민하고 있어요. 또 책은 10년 뒤에 우연히 보게 될 사람까지 생각해야 하고... 책을 만드는 쪽에서 확 끌고가는 시대는 아닌가 봅니다.
엇 그러셨군요. 아주 가까운 곳에도 그런 분이… 늘 고민이에요. 얼마나 설명할 것인가.
그래도 가끔은 '벌써 여기까지 읽었다고? 남은 분량이 이것밖에 안 돼?? 난 더 필요한데???' 하게 되는 책을 만난다. 『기병과 마법사』를 읽는 마음이 그래. 최소 수십 장에 걸쳐 다루어야 할 대사건이 최소 두 번은 더 일어나야 이야기를 맺는 시늉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책이 절반도 안 남았어? 그때부터는 겹겹의 긴장이 소용돌이친다. 이야기가 주는 흥분. 마음에 쏙 드는 책이 생각보다 빨리 끝나간다는 안타까움. 부족하게만 느껴지는 남은 분량 안에서 과연 이야기가 끝까지 만족스럽게 마무리될지 모르겠다는 우려. 그리고
도서관 신간 책장에서 『기병과 마법사』가 눈에 띄기에 쓱 넘기다 보니 오, 이것은 어쩌면 최근 〈전,란〉을 보고 생긴 전술 묘사에 대한 갈증을 채워 줄 소설일지도? 싶어 빌렸는데 전술이고 자시고 일단 도입부부터 마음에 쏙 들었고 와, 이런 문장은 대체 어떻게 떠올리나, 를 연신 되뇌며 읽다가 63쪽에 이르러 저녁 준비하려고 멈췄는데 너무 좋아서 살짝 목이 메네.
근대 이후 현대소설은 내면을 아주 대놓고 직접 쓴다는 점이 독특한 예술 장르. 내면이 길어지면 속도가 느려지기는 하는데, 그래도 내면은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본다. 서양식으로는 신과 대화(기도)하는 공간을 자기가 자기한테 중얼중얼 하는 걸로 채워 놓은 거라. '나는 신이 뭐라 하지 않아도 알아서 움직인다'인 셈인데, 결국 그 욕망도 온전히 개체 안에서 나오는 건 아니지만, 아무튼 신이 시킨 건 아니라는.
(이런 종류 연구는 리뷰가 필요하지만)
초파리 뇌 신경모델을 <업로드>해서 가상 환경 속 초파리 물리 모델을 실시간으로 움직이는데 성공했음.
x.com/michaelandre...
질병 치료, 인간 두뇌의 이해, 디지털화된 지능/지성의 실제 세상 로봇 제어...
(공각기동대 BGM을 틀어요)
리) 요즘 한국인 이름은 삼중으로 따져 짓고 잇으니 더 엄청나잖아. 일단 한국어로도 소리가 예쁘면서, 한자로 뜻이 좋고(이름으로 쓰는 한자 이내), 로마자로 옮겨쓰기도 쉽고 외국 사람도 발음하기 나쁘지 않은 소리<- 이 조합으로 짓잖아.
『기병과 마법사』는 결국 끝까지 엄청 무지 아주 매우 몹시 굉장히 대단히 지극히 만족스러웠고 2020년대 들어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취향 직격이었다고 단언해도 되겠는데 하지만 당장 오늘 아침 계속 생각하는 건 과연 권말 작가의 말이 필요했는지 여부. 작가의 말도 본문처럼 중언부언 없이 필요한 말만 꾹꾹 눌러 담았고 작가 본인에게나 동료 작가들에게나 독자들에게나 오랫동안 비석처럼 지침이 될 만한 내용이었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럼에도 본문 뒤에 곧바로 작가의 말까지 읽고 나니 감상을 조금 빼앗긴/작가에게 굳이 확인받은 기분이 들었어.
아, 이런 건 좀 어렵지요. 잘 맞는 독자는 이걸로 충분했다고 하고 낯설게 생각하는 독자는 좀 더 친절했으면 하고, 그런 의견을 정말로 동시에 듣기 때문에...
그런데 이게 문해력 문제처럼 한 줄로 줄 세우기 같은 게 아니고 책을 엄청 많이 읽는 가까운 독자 중에도 공간 묘사를 어려워하는 분들이 꽤 있거든요. 아무튼 이건 정답이라기보다는 그냥 선택인데, 잘 안 맞으셨다니 안타깝습니다. 원래 의도는 편집자와 동선을 맞추기 위한 설계도이긴 했어요.
끝까지 재미있게 보셔서 다행이에요.
작가의 말은 저도 앞쪽에 간단하게만 들어가면 좋겠다는 입장인데, 출판사가 그렇게 내버려두지 않더라고요.
이왕 쓰는 김에 집필 배경이나 맥락 같은 걸 남기고 있는데요, 경험상 비평으로 다시 언급되는 경우가 전혀 없다시피 하고, 그렇게 5년만 지나도 맥락이 다 사라져서 기록의 의미로 남깁니다. 그런데 정답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다들 창의적 사고가 중요하다고 말은 하는데, 창의적이어서 돈을 더 준다는 이야기는 별로 들어본 적이 없음. 유명함에는 선뜻 돈을 내고. 사실 창의적인 게 그렇게 중요한 건 아닌 거지.
부자는 현자가 아니라고. 그럴 리가 없잖아.
제도 설계의 기본은 인간의 선의에 기대지 않는 것이다.
(나는 이 말을 너무나 많이 했는데... 나 같은 게 말해봤자지 뭐...
(하지만 정책학의 기초 아닌가요...
똑같은 화면을 방송국 세 군데에서 동시에 보여주는 것도 딱히 좋지는 않지.
오늘도 나왔다, 벙커버스터. 저거 왜 저렇게 좋아하는지.
AI를 전쟁무기로 쓰는 게 그냥 담담하게 보도하면 되는 일인지... 10년 전에는 AI 무섭다고 호들갑이더니, 지금의 이 온도차는 뭘까.
한국 뉴스에서 전쟁 보도할 때 미국 무기 장면을 너무 신나게 소개하는 게 보여서 위화감이 느껴진다. 그놈의 벙커버스터는 엄청 좋아해요.
계속 부자연스럽게 써지는 부분이 있었는데 이번 주 내내 꾸역꾸역 고쳐서 드디어 자연스럽게 만들었다. 긴 혼잣말이지만.
SF 주인공이 우주선 타려면 나사로 가야지. -> 일론머스크?
옛날에는 지구가 위험에 처했을 때 미국 대통령이 나서서 뭘 하는 이야기 전개가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때가 있었는데요, 과연 지금도 그럴까?
지금 쓰고 있는 소설 재밌는데, 당연하게도 아직은 나만 보고 있다. 아주 긴 혼잣말 같다.
her라는 영화가 2013년에 나온 2025년 배경 영화라는데, 작년에 누가 그것과 똑같은 이야기를 만들었으면 SF로 보이지도 않았을 거예요.
사람들의 SF에 대한 이미지가 지난 세기 미국 SF 영화에 맞춰져 있어서, 왜 2026년에 1970년대 스타일의 작품을 만들지 않느냐(혹은 그렇게 만들면 안되느냐)는 이야기를 가끔 듣는데... 일단 50년 넘게 지났으니까요.
그런데 이상한 사람한테 자리 주는 게 국민통합 그런 건가.
소설 말고 뒤에 덧붙여진 작가의 말에서:
“(…)
가림막 너머 ‘교전구역’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애써 무시한 채 자신들의 세상이 안온하기만을 바라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린다. 배 작가는 “하지만 타인을 어디까지 지울 수 있을까요? 타인이 없으면 세상도 없다”고 말했다.
(…)
배 작가는 “실제 세계의 안위는 파티션으로 나눠져 있지 않다”며 “‘오늘 아침의 날씨’는 사는 곳에 따라 제각각일지 몰라도 이 행성의 기후는 하나밖에 없어요. 어떤 안위는 인류 전체에 딱 하나”라고 담담히 말했다.“
안 그래도 미국 대외정책은 인공지능 같은 면이 있는데, 어떤 지역의 역사적 과정을 잘 고려하지 않음. 인공지능이 바둑 둘 때 지금까지의 과정은 싹 무시하고 현재 상황과 미래의 승률만 계산하는 것처럼.
그런 태도를 지녔던 사람들이 만들어서 인공지능이 저렇게 작동하나 싶기도 한데, 그게 다시 대외정책에 적용되면 지역 국제정치 질서가 그렇게 구성된 역사적 맥락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는 경향은 더 두드러질 듯.
20세기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관심 끄고 "한국과 일본은 가깝게 지내야지" 하고 태평하게 말하는 그런 거.
2년 전에 이런 소설을 썼네. 신문에 실리는 짧은 소설은 제목 찾기가 무지하게 힘든데(이거 왜 이러는 건지 모르겠음), "파티션 너머에서 우리는 안녕하지"가 제목임.
www.munhwa.com/article/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