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도 몰라 보고, 김건희 주가 조작도 몰라보는 검사들에게 보강 수사를 맡긴 다 굽쇼? 이재명 아저씨 청와대 들어가더니 당신 기소한 검사들이 다 착해 보이나? 봅니다.
김학의도 몰라 보고, 김건희 주가 조작도 몰라보는 검사들에게 보강 수사를 맡긴 다 굽쇼? 이재명 아저씨 청와대 들어가더니 당신 기소한 검사들이 다 착해 보이나? 봅니다.
어떻게 한 국가의 장관이라는 작자가 경찰이 수사하다 돈 받고 사건을 덮어도 모른다라는 전제하에 보강 수사권의 논리를 만들까요?
그런 인간을 장관으로 쓰는 능력은?
당장 자르세요. 그 장관. 돈 받고 사건 덮는 경찰이 있다면 사형 시키면 됩니다. 광화문에 공개 총살로요
3.14 eel 魚 92 맞습니다!
온 세상 어린이를 다 만나고 오시겠어요~
지구는 둥그니까요~
내일이 pi 데이네요.
올~~~ 장어 구이 묵는 날이네요
3.14 15 92
지인이 초대한 어느 여교수님이 강의 요청이 있어, 정중히 거절했어요.
강의료가 너무 짜서요.
친한 교수님이 모 병원장으로 다시 노예의 삶으로 가는 것을 축하하는 모임을 오늘 하죠. 놀려 묵어야죠 ㅎ
쇼핑몰 창을 여나요???
ANC는 “저주파·정상파” 전용 기술에 가깝고, 그 여성 목소리처럼 고주파·변동성 큰 신호는 물리적 원리상 상쇄가 어렵습니다. 이 때문에 프리미엄 헤드폰들도 고주파 차음은 패시브(물리적 밀폐)에 의존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위상을 연구… 아 아닙니다 ㅎ
그 여성분 목소리 위상이 고주파 영역에 집중되어 있나 보네요. 파장도 짧아서 처리할 프로세스가 많아져 Latency가 발생되어 노캔 작동에 오작동이 생기나 보네요.
6개 한 묶음 가격이죠?
경찰이 그렇게 못 믿으면, 지금 검사들이 공수처 보내달라고 하면 되죠.
공수처는 안간다고 하면서 뭔 개소리를 신박하게~
육향과 산패취는 다른데 육향이라고 우긴다고 손님들이 아~육향이네 하고 즐겨 찾지 않을 일이죠.
저는 바로 배탈나기 때문에 산패취가 나는 곳은 못갑니다.
당일 로스팅하는 아몬드를 설날 스텝들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어디서 구할 수 있냐고 해서, 오늘 점심을 핑계로 다녀오기로 했지요.
가족들이 더 구해오라고 난리라고 합니다 ㅎ 회사 간식으로도 추가!
블스에 숨겨진 고수분들이 많네요!
속이 잘 보이는 삼각 펜.. 소유자 분 추가요!
속이 잘 보이는 삼각 펜… 이라고 해서 삼각 펜티? 내가 왜 이런 주문을 했을까? 했는데
속이 잘 보이는 삼각 펜케이스였답니다! 잘 보이는 거시기는 좀 이상했지 말입니다~
짱 좋아요.
naver.me/xEX2KJfG
좋은 문장은 길되 늘어지지 않고, 무겁되 가라앉지 않으며, 사유가 뒤엉킨 자리에서 순우리말이 불현듯 터져 나와 읽는 이의 숨을 멎게 하고, 죽음을 다루되 문장은 살아 떨리고, 만연하되 한 글자도 헛되이 놓이지 않은, 간결함이란 짧음이 아니라 밀도라는, 만연체란 흐트러짐이 아니라 사유의 끝까지 버티는 집요함이라는 것을, 박상륭 선생님은 글로 가르쳐 주셨죠.
적은 경험이나, 모든 정교한 체계는 임계점을 지나면 철학으로 수렴한다는 사견입니다. 저의 경우 코드는 문법이고 설계는 존재론이며 아키텍처는 세계관이죠. 개발 언어를 선택한다는 것은 곧 어떤 존재론을 택하느냐의 문제죠. 비트겐슈타인이 말했듯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입니다. 위대한 설계자는 결국 언어 철학자입니다. 무엇을 추상화하고 무엇을 은폐할 것인가? 로고스는 말씀이자 이성이자 구조입니다.
대세를 소환하는 자가 정작 대세의 절반에는 눈을 감을 때, 혹은 99%, 그것은 편견이 아니라 하나의 세계관입니다. 세계관은 진실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존속을 추구합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는 눈을 가리켜 통찰이라 명명하는 순간, 언어는 인식의 도구가 아니라 방어의 성벽이 됩니다. 흐름을 말하는 입술 뒤에서 헤게모니가 숨을 고르고 있다면, 우리가 듣고 있는 것은 분석이 아니라 자기보존의 언어라고 부른다죠. 신비롭게도 내가 해봐서 아는데~로 그 세계의 문은 40인의 도적처럼 열린다죠.
살아있는 문화를 동결된 전통으로 박제하는 일이 지배의 가장 우아한 형식이죠. 의례는 관광 상품이 되고, 신앙은 민속이 되며, 문화는 여전히 무대 위에 서 있지만 그것을 몸으로 살아내던 주체는 이미 객석으로 물러나 있습니다. 형식은 남고 맥락은 사라집니다. Bourdieu의 언어를 빌리면 아비투스의 해체, 몸에 새겨진 세계가 증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우리 문화를 살고 있는가, 아니면 전시하고 있는가요?
먹은 것 토하면 손해 아닌가요??? ㅎ
방송통신대학교 로스쿨을 신설하면? 그리고 시험도 AI 도움으로 보게하면? 외우는 시대는 이미 끝났는데 말이죠.
생각이 말이 되고, 말이 행동이 된다는 말을 신뢰하죠. 글을 보면 감추려 해도 내면이 나오는 법이죠. 험한 말은 결국 자신을 갈아 먹기도 하죠. 버릇처럼 나오는 험한 말이 거울인 셈이죠.
전생의 기억이라면 모를까 “절대” 기억이 없습니다!
AI가 만들어 준, 보고서를 리뷰도 안하고 올리면, 어찌 디펜스를 하려고 저러나 모르겠어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