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과번식된 귀뚜라미들의 살가죽을 달군다. 타들어간다. 무력하도다. 그들은 날지 않는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풍족하고 온화하다. 죽어간다. 귀뚜라미들의 개체수는 더욱 늘어나고 귀뚜라미들의 삶은 참혹히 시들어간다. 썩은 피, 여기에도 썩은 피, 저기에도 썩은 피! 파티. 즐거운 파티. 천천히 썩은 피는 유혈사태가 아니라고 하면 된다, 그치? 즐거운 파티.
햇살이 과번식된 귀뚜라미들의 살가죽을 달군다. 타들어간다. 무력하도다. 그들은 날지 않는다. 자유롭고 평등하게 풍족하고 온화하다. 죽어간다. 귀뚜라미들의 개체수는 더욱 늘어나고 귀뚜라미들의 삶은 참혹히 시들어간다. 썩은 피, 여기에도 썩은 피, 저기에도 썩은 피! 파티. 즐거운 파티. 천천히 썩은 피는 유혈사태가 아니라고 하면 된다, 그치? 즐거운 파티.
La chair habite dans la nuit
기만, 자존심, 자아도취야말로 자기자신에게 진실될 수 있는 소중한 최선의 길
공정함따위 화투에서나 찾아라
공정함은 삶은 게임으로나 치부하는 자들이 논하는 것이다
너무 환원주의적이고 본질주의적이지 않아?
각 요소가 근본적인 성질이라도 있는것 마냥 전개하는데 현실 사회가 돌아가는 방식하고는 괴리가 있지 않아? 애초에 가령 한국과 폴란드 중에 무슨 사회가 더 자유로울까? 무슨 사회가 더 평등할까? 라는 질문에 대답하기가 그렇게 간단한 일일까? 그걸 위해 임의의 가정으로 도배된 수치적 해석 기준을 세워야한다면 애초에 그 자유축와 평등축이라는 개념 자체가 조악하다는 반증 아닐까?
절대적인 것이란 주관 속에 있으며 상대적인 것이란 객관 속에 있다. 해답을 찾고자 한다면 주관적으로 생각하라. 나약함에 빠져 미천한 거짓과 놀고싶다면 객관적으로 생각하고 사회적 합의를 우선시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