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빈란드 사가』 완결됐구나.
오, 『빈란드 사가』 완결됐구나.
빈란드 사가 29권 완결 감상 완료.
예전에 실제 역사와 대조해 빈란드 사가를 보면서 토르핀의 방식은 필연적으로 실패할거다. 라고 말했는데, 내가 틀렸네. 애초에 실패한적이 없는, 아직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항해를 내가 멋대로 실패해버렸다고 해버렸네.
멋진 작품이었다. 특히나, 지금의 시대에는 꼭 필요한 작품이었고. 무엇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을 한 뒤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라는 이야기를 어른스럽게 한 작품이었어.
〈죽은 것〉 포스터. 침대 시트 위에 누워 두 손으로 뺨을 감싼 여자. 시체를 표현한 것처럼 전체적으로 푸르스름한 빛. 빨간 립스틱을 칠한 입을 벌려 윗니를 드러내고 있는데, 코 위로는 어둠에 묻혀 눈은 보이지 않기 때문에 어떤 표정인지 확신할 수 없다.
〈죽은 것〉 스크린 숏. 도심 야경을 배경으로 누르스름한 조명이 비치는 다리 형태의 구조물 한가운데에 서서 뒤를 돌아보는 주인공 알렉스(배우 블루 헌트).
식당 카운터에서 창 밖을 내다보는 종업원과 손님. 식당 바깥에서 창문을 통해 촬영한 화면으로, 유리 모양 때문에 이미지가 중첩되어 있으며 손님은 어둠에 묻혀 얼굴이 보이지 않는다.
LA의 야경. 멀리서 본 고층 건물들이 화면을 여백 없이 가득 채우고 있으며, 조명 없이 캄캄한 부분과 노란 조명이 켜진 부분의 대비가 두드러져 언뜻 보기에는 모종의 추상화 같기도 하다.
13일의 금요일을 맞아 감상한 영화는 2024년 작 미국 LA 인디 호러 〈죽은 것〉. LA의 밤을 무대로 몽환적이고 으스스하고 변태적인 남녀 관계를 다루는 심리 호러 멜로드라마. 감독은 영화 팟캐스터/교수자 에릭 케인. 이 사람이 영화 이야기하는 걸 십 년 넘게 꾸준히 들었는데, 그동안 꾸준히 말했던 취향이 듬뿍 담겨 있었다. 엉성한 부분도 많아서 썩 만족스럽진 않았지만 그래도 인디 데뷔 장편이 이 정도면 괜찮다고 봐야지. 디테일이 부족해서 그렇지 접근 방식은 좋았고 '이런 걸 하고 싶었구나' 하는 점은 잘 전달됐으니.
류킨파 (2)
류킨파 (1)
페킨파는 〈짝패〉에서 대놓고 인용했던 것이 유독 기억에 남아서 연관지었던 측면이 크고, 역시 직접 연결은 어렵겠죠. 오우삼을 매개로 한 연결인 셈인데, 멜빌-레픈도 그 정도 거리는 있으니까요😅 (구욷이 뭔가를 찾자면 〈팻 개럿과 빌리 더 키드〉에서 밥 딜런의 노래를 썼던 것이, 〈주먹이 운다〉에서 "연가"를 쓴 이래 흘러간 한국 대중 음악을 적극 끌어들여 장면의 정서를 북돋는 취향과 조금은 닮은 것 같아요. 아마 자신의 세대에 익숙한 대중 음악을 영화에 쓰자는 발상 자체는 페킨파가 아니라 스콜세지에게서 왔을 것 같지만.)
그런데 이 가상의 기획전 공상으로 한정한다면, 저로서는 류승완이 오우삼과는 분명히 이어지나 페킨파하고는 잘 모르겠습니다. 멜빌이라면 그나마 어울릴 지라도, 중간에 다른 계보가 들어와야 할 것 같아요. 그 중에서도 특히 성룡을 빼놓으면 류승완의 절반을 잃는다는 생각. 애호가 출신으로서 본인이 원한 일은 아니겠지만, 류승완은 한국 대중영화에서 시장의 기대까지 충족시켜야 하는 커다란 존재가 되어버렸고요. 이번 기획전의 레픈도 이어맞추기 위해 좀 무리한 기분은 들기는 하나, 현대 범죄 장르라는 큰 바운더리 안에서는 적당한 선정이랄까요.
류우삼
그래서 사실 이렇게 류승완을 다시 상상의 계보에 집어넣는 것이 쬐끔 미안해지기도 합니다. 타란티노와 비교 당했던 시절이 워낙 길어서 누구랑 닮았다, 누구를 떠올리게 한다, 하는 소리는 듣고 싶지 않을 테고, 2020년대 류승완 영화의 원숙한 장인스러움에 감동했던 저로서도 이제 와서 별로 강조하고 싶진 않은데...
...그치만 이미 〈짝패〉에서 영상을 따 버리고 말았으니까요.
말씀하신 바가 참으로 제 생각과 같습니다. (죄송. 이 삼국지스러운 문장을 한 번 써 보고 싶었어요.) 저는 〈모가디슈〉부터 그런 인상을 받았어요. 후반부의 자동차 추격 장면 같은 건 옛날 같으면 '영화광' 류승완이 〈매드 맥스〉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티가 났을/티를 냈을 텐데, 분명 엄청나게 공들였을 장면임에도 '그냥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니까 이렇게 찍었을 뿐이죠' 하는 표정으로 쓱 보여줘서 레퍼런스는 물론 세트 피스라는 느낌마저 남기지 않더라고요. 이제는 애써 자신을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구나 싶어 오랜 팬으로서 뭉클했어요.
헉! 저도 사실 류승완의 이름을 가장 먼저 떠올렸는데요, 누군가 댓글로 제시할 이름을 더 알고싶어서 적지 않았습니다. 대파탈출님의 <휴민트> 감상이 제 감상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옛날에 팬심으로 오마주하고 표절하고 패러디했던 사람이 지금 분명한 작가/장인으로서 선대에 받은 유산을 완전히 자신의 필모에서 녹여 이제 자신의 것을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멜빌도 오우삼도 떠올랐는데, 사무라이의 장면이 아니라 이건 멜빌의 정서에 상응하는 류만의 태도인 것이구나, 이건 오우삼의 표피가 아니라 굳이 말하자면 <첩혈가두>인데? 하면서요.
꼭 슬로모션과 교차편집이라는 구체적인 연출 양식보다도 작품 전반의 태도와 정서라는 측면에서 곧바로 류승완 감독을 떠올렸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정확하게 해당하는 작품이 많지 않아 프로그램 편성은 어렵겠지만요. 평소 〈짝패〉 한 편만으로도 그 자리에 들어갈 만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휴민트〉를 보고 '아니, 감독님, 아직도 그쪽 정서 다 걷어내지 않으셨군요!' 하며 마음으로 울었어요. 동시에 '제발 정신 차리세요, 요즘 이런 식으로 저를 울리시면 흥행은 안 된단 말이에요!' 하고 탄식도 했지만요.
"PLAYS LIKE A PERFECT CROSS BETWEEN JEAN-PIERRE MELVILLE AND SAM PECKINPAH"
영자원 '멜빌-만-레픈'전이 어제부터 시작했겠군. 후속 기획으로 '페킨파-오우삼-( ? )'전을 한다면 괄호에 들어갈 적자適者는 누구인가. 슬로모션과 교차편집으로 헤모글로빈 교향곡을 작곡하는 지금의 폭력미학자는?
youtu.be/bdLwJ2-zxDA
페킨파는 〈짝패〉에서 대놓고 인용했던 것이 유독 기억에 남아서 연관지었던 측면이 크고, 역시 직접 연결은 어렵겠죠. 오우삼을 매개로 한 연결인 셈인데, 멜빌-레픈도 그 정도 거리는 있으니까요😅 (구욷이 뭔가를 찾자면 〈팻 개럿과 빌리 더 키드〉에서 밥 딜런의 노래를 썼던 것이, 〈주먹이 운다〉에서 "연가"를 쓴 이래 흘러간 한국 대중 음악을 적극 끌어들여 장면의 정서를 북돋는 취향과 조금은 닮은 것 같아요. 아마 자신의 세대에 익숙한 대중 음악을 영화에 쓰자는 발상 자체는 페킨파가 아니라 스콜세지에게서 왔을 것 같지만.)
말씀하신 바가 참으로 제 생각과 같습니다. (죄송. 이 삼국지스러운 문장을 한 번 써 보고 싶었어요.) 저는 〈모가디슈〉부터 그런 인상을 받았어요. 후반부의 자동차 추격 장면 같은 건 옛날 같으면 '영화광' 류승완이 〈매드 맥스〉에서 가져온 것이라는 티가 났을/티를 냈을 텐데, 분명 엄청나게 공들였을 장면임에도 '그냥 이야기가 이렇게 흘러가니까 이렇게 찍었을 뿐이죠' 하는 표정으로 쓱 보여줘서 레퍼런스는 물론 세트 피스라는 느낌마저 남기지 않더라고요. 이제는 애써 자신을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구나 싶어 오랜 팬으로서 뭉클했어요.
다 이해하는데 그래도 솔직히 좀 웃었어요.
실제로 법인 수익을 면세한단 점에서 통상 자본주의 룰은 아님
꼭 슬로모션과 교차편집이라는 구체적인 연출 양식보다도 작품 전반의 태도와 정서라는 측면에서 곧바로 류승완 감독을 떠올렸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물론 정확하게 해당하는 작품이 많지 않아 프로그램 편성은 어렵겠지만요. 평소 〈짝패〉 한 편만으로도 그 자리에 들어갈 만하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에 〈휴민트〉를 보고 '아니, 감독님, 아직도 그쪽 정서 다 걷어내지 않으셨군요!' 하며 마음으로 울었어요. 동시에 '제발 정신 차리세요, 요즘 이런 식으로 저를 울리시면 흥행은 안 된단 말이에요!' 하고 탄식도 했지만요.
엘릭시르에서 ‘금요 미스터리’라고 미스터리 뉴스레터를 오늘부터 개시했는데 첫 번째라 그런지 생각보다 빡빡하네(꽤 읽을 게 많다는 의미). '불가능 범죄'를 다룬 최고의 미스터리 BEST 15가 실려 있고, ‘머더 미스터리’라고 매 번 사인(死因)을 하나씩 관련 작품과 함께 소개하는 연재가 있다. 이번 주는 독살. 근데 웹 버전 제공해주면 좋겠다…
미스터리 장르에 관심 있는 분들은 아래 링크로 구독을.
page.stibee.com/subscription...
이제 블스도 만만찮게(?) 이용자 많아졌는데 (장르) 출판사들 여기서는 영업 안 하십니까… 마케팅 채널을 한 군데라도 더 늘리셔야 하는 거 아닌… (쿨럭)
Nicole Kidman in her 1988 stage debut as Shelby in the first Australian production of Steel Magnolias looking into a fake mirror
Have you ever seen a picture of Nicole Kidman in her 1988 stage debut as Shelby in the first Australian production of Steel Magnolias? Well now you have.
오래된 극장 상영용 프린트야말로 '원본'이라고 주장할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최근 애로우의 제작자 제임스 플라워가 〈히트〉 35mm 필름 상영을 보고 와서 그간 막연히 차가운 무채색 조의 영화라고 기억하고 있었는데 실제로는 〈파리, 텍사스〉나 (아이러니하게도) 〈도둑〉 4K 복원판을 떠올리게 하는, 화려한 컬러 팔레트가 돋보이는 영화라서 놀랐다며 현재의 (4K) 블루레이에 아쉬움을 표했던 것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The Typical Geeks의 예고편은 아마 가장 최근에 나온 4K 복원판을 소스로 썼을 텐데, 극장용 예고편 필름과 색감이 꽤 다르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1995년 극장용 예고편 필름 4K 스캔.
너어어무 요즘 예고편 편집이긴 한데 그래도 멋지다는 건 인정할게요.
소금빵은 유독 먹을 때마다 이건 소금빵이라는 음식이 낼 수 있는 맛의 최대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생각하게 된단 말이죠. 요리사도 예민한 미식가도 아니고 제일 좋아하는 빵이 소금빵인 것도 아닌 저에게 어째서 그런 소금빵의 이데아?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요. 내가 먹어 본 소금빵 중에서는 여기 것이 최고야! 하는 기준이 있어서 그곳의 맛과 비교하는 것도 아니니 말 그대로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이데아.
나는 자꾸만 '세계'라고 불리우는 이 땅을 '경계'라고, 그리고 그 땅위에서의 '버티기'를 '줄타기'로 생각하는 남자가 되어간다. 서울이 좋은 것은 서울아트시네마 뿐이다. 각종 영화제에서 회고전이니 재발견이니 뭐니 해서 클래식을 재상영해주는 건 어쩐지 구색맞추기나 생색내기같아서 싫다. 어쨌거나 내 편협함으로, 고전은 시네마테크에서 봐야한다. 시네마테크는 도심 한가운데 있어야하고 고전을 보러가는 나는 늙어가는 젊은이여야 한다. 서울아트시네마에선 일본영화 고전을 한달에 한편씩 무료로 상영한다. 이번에는 <기아해협 飢餓海峡>(1965)을 보고왔다. 183분의 러닝타임이 내게는 압도적으로 다가왔다. 소설 원작의 분량이 가진 방대함을 일단 제쳐두고서라도, 처음 나는 이 영화가 1시간 30분 내지는 2시간에다가 얼마든지 끼워맞출수 있는 이야기라고 봤다. 그러한 생략의 미덕이 있어도 괜찮을 것 같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이 영화는 3시간이 필요했다. 대중영화(예술과 상업을 나누는 헛된 짓을 하지 말고 실험영화를 제외한 모든 영화를 이렇게 부른다면)에서 가장 길 수 있는, 그리고 그 이상은 길어선 안되는 러닝타임의 한계는 아마도 3시간 정도인 것 같다. 한 영화가 3시간의 러닝타임을 필요로 할때, 가장 큰 이유는 그 이야기가 다루고 있는 '시간' 때문일 것이다. 관객에게 '역사'를 느끼게 하기 위해서, 3시간이 필요한 영화들이 있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가, <대부>가, <타이타닉>이, <반지의 제왕>이 그랬다. 이 영화도 마찬가지였다. 리얼타임으로, 이누카이에 대한 6명의 형사 전원의 조사 및 보고 내용을 꼼짝못하고 들어야만 했을 때(영화는 보고 전 각 형사의 서장에 대한 인사까지 다 보여준다), 그리고 이누카이를 심문한 후 형사들끼리 차 한잔하며 의견을 나누는 장면까지 다 봐야만 했을 때 그것은 더욱 명백해졌다. 저 형사들이 수사하고 있는 내용은 10년의 세월이 흐른, 그리고 그 10년을 고스란히 담은 사건이기 때문이었다. 3시간의 러닝타임에 진을 빼면서 관객은 그제서야 10년이라는 시간과 역사의 크기를 '체감'한다. 겉으로는 단순한 범죄 '사건'이 거대한 '역사'가 된다. 그리고 그 역사를 영화속 인물들이, 배우가 연기로 전해준다. 이누카이는 침묵과 거짓으로 10년을 버텼고, 야에는 사랑과 존경으로 10년을, 노형사 유미사카는 추적과 의문으로 10년을 버텼다. 이들에 비해 겨우 3시간을 버텼을뿐인 관객은 그러고나서야 10년을, 일본의 역사를 어렴풋이 가늠하게 된다. 영화에 대한 잔상이 크게 남아 검색을 해봤더니 재미있는 자료가 있었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영화 이후 만들어진 것 같다) 이시카와 사유리가 부르는 같은 제목의 엔카가 있어 여기 올린다. 가사는 영화 속 야에의 10년이 그대로 옮겨져 있다. 절절하다.
코지마 감독이 <기아해협>의 블루레이를 올려 또 가져와보는 예전 블로그 글. 우치다 도무의 이 영화를 떠올릴 때마다 다시 더듬는 애상적인 정서가 있다. 처음엔 러닝타임에 압도되었으나, 지금은 감정만이 남아있다. 시간의 경험이 기억의 퇴적층에 쌓여, 그것이 곧 감정이 된 것일지 모른다. 애로우에서 놀랍게도 블루레이를 내주었는데 다시 보고싶단 생각을 늘 하면서도 위시리스트에 담아놓기만 한지 오래. (저 당시에 나는 아주 조그만 소니 디카를 가지고 다니면서 캔디드 촬영이 일상이었고, 몰래 스크린도 찍곤 했다. 지금은 그러면 안 된다.)
본문에서 언급되는 장 피에르 멜빌의 <리스본 특급>이 바로 이번 '멜빌-만-레픈'전에서 상영하는 <형사 Un Flic>(1972)이오니 참고하시길.
보러가고 싶지만 매진이라고 하니 오래 전 디비디나 훑어야지.
www.koreafilm.or.kr/movie/PM_010...
아악! 가스레인지 후드 청소하기 전에 소스부터 만들어야 했는데!